241002 선물

Date/ 2025. 2. 25. 22:06




나로글입니다. 퇴고탈고안햇습니다 오타많슺니다
감사합니다
 
 


 
 
 그 녀석과 나는 완전한 타인이다. 
 
 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가까운 사람이란 건 가족 이외에 가져본 적이 없다. 모두 친구니, 연인이니 말하지만 내 인생은 그런 거 만들 정도로 한가하지도 않았고! 정말 생존, 그 하나만 보고 계속 달려왔다. 급하게 달려오다 보니 나는 무엇을 목적으로 살고 있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. 짬이 날 때, 그러니까 휴일에(솔직히 빌런이 휴일 같은 거 있을 리가 없지만!) B급 영화를 보면서 시간 때우기? 아님 길가에 서서 줄담배 피우기? 뭐 지금 와서 이런 거 생각해 봤자 진심이 아닌 것뿐이고.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. 나탄, 나탄 워커. 내가 두 번째로 같이 살게 된 사람인 그 녀석은 솔직히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. 내가 다쳐서 들어오면 죽을 것 같은 낯으로 나를 간호해 준다거나…. 아님 작은 상처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거나. 내 손등의, 배의 흉터를 보여주게 된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? 내가 추측하기에는 그녀석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. 나보다 어려운 단어를 조금 더 알고, 어휘나 기초 학력 같은 게 더 높지만…… 하는 일도 잘 모르겠다. 소설을 쓴다곤 했지만 소설 쓰는 모습 한 번도 본 적 없고… 보통 소설을 쓴다고 하면 한 번쯤은 편집자와 만나서 대화라도 하지 않나? 나는 지금껏 그 녀석과 살면서 걔가 담배를 피우러 가거나 장을 보러 가거나 할 떄 빼고는 나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. 생각해보니 좋아하는 것이라든가 선호 영화도 잘 알지못한다. 뭐, 추리소설을 쓴다고 했나? 그럼 셜록 홈즈 같은 거 좋아하겠지? 아니면…. 누구였더라? 아… 아가사 크리스티, 크리스? 라든가…. 아무튼 이런 거 다 치워두고!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건 내 특기가 아니었다. 나가서 뭐라도 하면 선물할게 뭐라도 생각나겠지, 하면서 방에 굴러다니는 옷을 걸치고 나왔다. 정장도 매일 입을 순 없으니까… 평범한 검정색 바지와 검정색 니트를 입고 나왔다. 쌀쌀해서 와이셔츠 한 장으로는 버틸 수 없었다. 
 
 집 밖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발이 가는 데로 갔다. 담배를 반 정도 태우고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 당도한 것은 번화가였다. 아…되돌아가야 하나. 히어로들과 싸우며 깡패짓하는 것이 주된 일상인 나에게는 히어로가 쉬는 날이 곧 휴일이었다. 그 말은 즉, 이 거리에는 히어로가 엄청 많다는 것이었다. 팰 때도 딱히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패는지라 다른 빌런들처럼 얼굴을 가리거나 하진 않았다. 거추장스럽기도 하고…. 거리에는 얼굴을 아는 히어로가 많았지만 무시하고 걷기 시작했다. 걔네들도 휴일까지 일을 하고 싶진 않았는지 필사적으로 무시하는 게 보였다. 와우, 직업의식이 이래도 돼? 히어로 다 망했네, 하하! 불을 붙인 담배가 내 손을 태우려고 할 때쯤 나는 담배를 끄고 눈에 보이는 서점으로 들어갔다. 번화가에 있는 서점이라 그런지 원서도 꽤 있었다. 해리포터… 한 번도 보진 못했지만, 영국의…국민 소설이랬나? 대충 마법사인 해리포터가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라고 했다. 나는 딱히 그런 거창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다. 스테디셀러 코너에서 추리소설 코너로 넘어오자 아까 떠올렸던 셜록 홈즈 시리즈나 장편 추리소설 모음집 같은 게 많이 꽂혀있었다. 전부 그 녀석의 책장에서 본 책들이었다. 여긴 아닌가….하고 걷다 보니 어느새 영화 DVD 코너로 넘어와 있었다. 음, 여기도 해리포터…. 솔직히 선물 고르기도 점점 질려오기 시작했다.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건 이렇게나 재미없는 거구나. 그 녀석에게 신세를 많이 져서(간병이나 집세 같은 문제로), 뭐라도 주려고 했는데…. 집중력이 확 떨어져 버렸다. 해리포터 같은 영화가 아니면 대부분 로맨스나 코미디밖에 없었다. 여기도 꽝인가?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음반 코너로 가서 구경했다. 기분 전환도 되고 좋았다. 17살 때였나? 런던으로 넘어와서 이리저리 치이며 살아갈 때 노이즈가 잔뜩 낀 기타 소리가 나를 일으켜 세워 주었던 기억이 있다. 사실 그건 아주 적었던, 그러니까 드물었던 일이었고 비밀 기지에서 함께 체온을 나누며 잠을 잤던 고양이(토미)가 큰 역할을 했다. 과거 회상만 잔뜩 하고 별 소득을 얻지 못한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. 시간은 꽤 지나 처음 나온 시간인 4시에서 6시로 바뀌어있었다.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사람들의 활기는 더 강해져만 갔다. 그걸 보고 있으니 갑자기 혼자라는 게 확 느껴졌다. 기분이 이상해져서 골목으로 발길을 돌렸다.
 
 걷는 동안 생각했다. 내가 또 심한 말을 한 이후로 그 녀석은 계속 자신의 방에 처박혀 있었다. 처박혀야 할 사람은 난데. 전——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! 아니, 회피하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까지 회피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? 아,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미궁에 빠져만 갔다. 물론 내가 잘못하긴 했지만. 그건 이미… 사과했고. 이러쿵저러쿵 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니 어떤 시계 가게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. 이미 선물을 사 갈 마음은 전혀 없어졌지만, 그냥 들어가 봤다. 
 
 시험 삼아 들어간 가게 안은 의외로 넓었다. 하지만 책 같은 잡동사니가 많아서 오히려 좁아 보이는 느낌이랄까… 조명도 노란빛이 돌고, 가게에서 나는 향도 진정되는 나무 향이었다. 향수를 뿌린 건가?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직원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. 혹시 찾으시는 거 있으신가요? 
 
“선물용…. 일상에서 쓸만한 걸로.”
 
 그럼 이런 건 어떠신가요? 직원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진열대로 끌고 갔다. 끌려간 곳에는 여러 가지 시계가 진열되어 있었다. 요즘 선물용으로 인기인 상품들이에요. 가족, 친구, 애인할 것 없이 많이 사가시죠. 직원이 추천해 준 시계들을 둘러보다 눈에 띄는 시계를 발견했다.
 
“은색….”
 
 아, 은색 시계를 더 선호하시나요? 그럼 이런 상품들을 추천해요. 가볍고, 착용하기에도 편하답니다! 가볍게 흘린 말이었는데도 점원은 빠르게 듣고 다시 시계를 추천해 줬다. 그렇게 추천해 준 상품들 사이에서 정말 이거다! 하는 시계를 찾아냈다. 은색 시계에 검은색 가죽 줄. 검은색으로 도색된 시침에는 보라색이 약하게 감돌았다. 딱 그 녀석이라는 느낌… 나는 그 시계를 감상하다가 점원에게 말했다.
 
“…이걸로 주십시오.”






*





 포장까지 마치고 나오니 이미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. 해가 지고 기온이 떨어져 더 추워지기도 했고… 나는 빠르게 집으로 향하며 생각했다. 집은 무어든 될 수 있다. 그러니까, 낙원이든 지옥이든. 코츠월드에서 내가 아버지와 살던 그 집은, 어린 내겐 낙원이었다. 하지만 이상함을 인지하고 나서는 지옥과 낙원 그 사이에 있었지. 지금 나와 그 녀석이 살고있는 그 집은 솔직히 지옥이다. 딱히 지내면서 편하지도 않고…. 다쳐서 들어오면 심하게 떠는 그 녀석 때문에 눈치도 살살 봐야 하고. 하지만 언젠가는 낙원으로 바뀔 것이다. 나와 그 녀석 사이에 관계가 더 개선되고…. 마음을 털어놓거나 한다면... 그러니까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. 나는 그 집을… 낙원으로 삼기로 했으니까. 이제 남은 것은 그 녀석의 몫이다.





*






집에 돌아와서는 곧장 그 녀석의 방 앞으로 갔다. 저번처럼 나와 있거나 하진 않았다. 뭐, 잘된 일이지. 이런 거…. 마주 보고 주기엔 너무 낯간지러우니까. 문 앞에 검은색 상자로 포장된 시계를 두었다. 나오면서 밟진 않겠지? 아니 뭐, 이젠 그 녀석의 것이니까 어떻게 되든 상관없긴 했다. 나는 더 이상 시계에 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. 생각을 끊는 데에는 담배만 한 게 없지! 하하.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방으로 돌아갔다. 간만의 외출이 끝이 났다.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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